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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문턱을 넘기 전까지… 나는, 우리는 여전히 살아 있다"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21/10/12 [18:20]
호스피스 의사의 깨달음 담은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죽음의 문턱을 넘기 전까지… 나는, 우리는 여전히 살아 있다"

호스피스 의사의 깨달음 담은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이광열 기자 | 입력 : 2021/10/12 [18:20]

 


호스피스 의사의 깨달음 담은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영국의 공중 보건 의사이자 완화 의료 전문가가 아버지가 암 진단을 받은 후 모든 것이 뒤죽박죽되고 말았지만 그를 떠나보낸 후 후회 없는 삶의 태도를 깨닫는 과정을 그린 책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레이첼 클라크 지음·박미경 옮김·메이븐 발행·376·16,800)의 원제는 '삶에게(Dear Life)'이다. 암담한 마지막 순간에도 기쁨을 찾는 환자들을 통해 삶의 의미를 새롭게 담아냈기 때문이다.

 

의사인 저자가 환자들의 마지막을 지켜본 사유와 아버지를 힘겹게 보낸 경험을 통해 존엄한 죽음을 이야기한다.

 

나이 들어도 여전히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는 우리에게 전하는 가슴 뭉클한 이야기로 가득한 이 책에 대해, 옵저버의학 관련 회고록이 거의 5분에 한 권씩 나오는 와중에 이 책은 단연코 다섯 손가락 안에 들 만큼 훌륭하다라는 찬사를 보냈고, 가디언이 책에서 나를 울컥하게 만든 부분은 죽음에 관한 구절이 아니라, 살고 사랑하고 이별하는 법을 배우는 구절이었다라고 평했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전반부는 의료인으로서 경험한 죽음을 다루는 의료계의 냉정하고 차가운 방식에 대한 문제 제기다. 가령 저자는 회복 불가능한 질병으로 죽어 가는 환자들에게 심폐소생술(CPR)은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잔인한 과정이라고 주장한다. CPR로 환자의 생명을 영웅적으로 구하는 의학 드라마는 터무니없이 과장됐다는 지적이다.

 

후반부는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호스피스 환자들과의 인연을 담았다. 죽음을 둘러싼 끔찍한 상상을 죽어가는 환자들에게 투영했던 저자와 달리, 환자들은 죽음으로 향하는 길목에서도 충만한 삶을 찾고자 했다.

 

사람들은 흔히 호스피스에서 일하는 게 힘들고 우울할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는 정반대라고 대답한다. 호스피스에는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용기와 연민, 사랑하는 마음 등 인간 본성의 선한 자질이 가장 정제된 형태로 존재한다. 자신의 아픈 심장보다 치매에 걸린 아내가 혼자 남겨질 것을 더 걱정하는 마이클, “내일 죽더라도 오늘은 브리지 게임을!”이라며 끝까지 일상을 이어 간 도로시, 손자의 여섯 번째 생일까지 버티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사이먼, 80년간 숨겨 온 비밀을 마지막 순간에 털어놓고 가장 자기다운 모습으로 죽은 아서.

 

급성 장폐색으로 응급실에 들어와 호스피스로 이송돼 온 도로시는 죽음을 목전에 뒀지만 20년 동안 동네 친구들과 해 온 카드게임을 하기 위해 깔끔하게 단장하고 외출길에 나선다. 60대인 테레사는 생애 마지막 해를 시와 함께 보내며 "그냥 살아 있다는 순수한 즐거움에 감사하고 있다"고 말한다. 유방암이 악화된 20대 초반의 엘리는 약혼자인 제임스와 병원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그리고 예식 다음 날 남편의 품에 안겨 숨을 거둔다.

 

별것 아닌 삶에 모든 것을 바치는 어리석고 아름다운 사람들로부터 오히려 후회 없는 삶의 태도를 배운다. 삶의 마지막 단계에서 이들이 원한 것은 소박한 일상이었다

 

대장암이 간으로 전이된 저자의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아버지는 화학요법을 포기한 후 어머니와 함께 젊은 시절 데이트했던 해변으로, 결혼식을 올린 교회로 여행을 다닌다. 저자는 "아버지는 수척해지고 기력이 떨어졌지만 기분만큼은 늘 들떠 있었다"고 전한다.

 

저자 레이첼 클라크(Rachel Clarke)?

 

윌트셔 시골에서 지역 보건 전문의의 딸로 태어나 아버지가 환자를 돌보는 모습을 지켜보며 성장했다. 아버지의 진료소에서는 해마다 동네 아이들이 태어나고, 노인들이 눈을 감았다. 언제나 환자의 처지를 먼저 헤아리는 아버지를 보며 친절하고 인정 많은 의사상을 가슴에 새겼다.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철학, 정치학, 경제학을 전공했고, 졸업 후 알카에다, 콩고 내전 등 다양한 주제의 시사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저널리스트로 일했다. 그러나 1999년 런던에서 발발한 테러 현장에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뒤,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는 의사가 되기로 마음먹고 20대 후반의 늦은 나이에 의대에 진학했다.

 

의사 면허를 딴 후 고된 응급실 근무를 자처하며 사람을 살리는 의학의 역할에 매료되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환자를 사람이 아닌, 고쳐야 할 장기나 부속품 정도로 대하는 차가운 의료 현실에 직면해야 했다. 의사들은 환자들이 겪는 혼란과 고통에 무감했고, 소생 가능성이 없는 말기 환자들은 병원에서 쉽게 내동댕이쳐졌다. 결국 그녀는 환자 중심의 의술을 펼칠 수 있는 분야를 고심한 끝에, 동료 의사들이 꺼리는 분야이자 말기 환자들의 인간다운 죽음을 위해 애쓰는 완화 의료(호스피스)를 전문으로 삼기에 이른다. 저자는 호스피스에서 제대로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고 말한다.

 

이와 더불어 2017년 아버지의 대장암 투병과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겪으며 사랑이야말로 사람을 살게 하는 힘이며, 이별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사랑하고 헌신하며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인간으로 태어난 우리의 운명임을 깨달았다고 전한다. 막상 아버지가 암 진단을 받은 후 모든 것은 뒤죽박죽되고 말았지만 아버지를 떠나보낸 후엔 후회 없는 삶의 태도를 깨달았다고 한다. 

 

호스피스 환자와 보통 사람들 사이의 차이는 단 하나뿐이다. 그들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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